a) 확신과 이해 가운데 행동하는 꼴레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꼴레의 말뿐만 아니라 그녀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태도이다.꼴레는  당당하고 거침없이 불의에 맞선다특히 가치전도의 주범이라   있는 남성원로들과 여사제들에 대하는 의연한 태도에서 예수가 성전청소를 행하던  기개가 느껴진다그리고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 대한 한없는 용납과 보호가 잔잔히 그려진다여성할례는 종교적으로도전통적으로도 정당화될  없는 악행임을 일관되기 표현한다꼴레의 딸이  나를 할례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녀는 당당하게 말한다.: “알라는 위대하셔네가 ‘빌라코로’임을 부끄럽게 느끼지 알았지생식기 절단(genital mutilation) 악한 짓이야‘빌라코로’는 좋은 부인이고 좋은 엄마란다. 

 

 

             b) ‘물라데’의 연대와 해방공간

 

꼴레네 집의  명의 부인들은 서로 싸우지 않는다그리고  부인을 중심으로 초지일관 꼴레를 지지한다그리고 여사제들이 몰려왔을 때나 꼴레가 끌려가 채찍을 맞을  그녀의 뒤에 버티고 서서 변함없는 지지를 표현한다이런 행동 때문에 원로들이나 여사제들이 꼴레를 함부로 다룰  없게 된다연대를 통하여  여성의 버팀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동시에 꼴레의 집은 해방공간이다. 이곳을 찾은 소녀들은 보호함을 입고함께한 여인들은 자유함과 편안함이 있다그리고 유대감을 얻게 된다그리고 함께 축제의 춤을 춘다꼴레 말을 듣지 않고 몰래 딸을 빼내가 할례를 받게  결국 죽게  여인의 처절한 통곡에 여인들이 함께 운다그리고 자기의 갓난아기를  어미에게 내어준다서로가 서로의 자녀들이요어머니들임을 선언하는 행동이다연대가 절정에 이르는 장면이다.

 

물라데 통하여 형성된 해방공간은 기존의 억압적 현실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탈중심화의 공간이요 대항 헤게모니를 창출할  있는 공간이그래서 이런 공간을 통하여 서로의 의식화불의한 상황에 대하여 ‘아니오’   있는 시각과 용기평등한 존재에 대한 확신구체적이며 역사적인 공간에서의 실천적 평등성에로 연결을 지향해 나갈 여성해방의 길이 열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 공간이 바로 교회가 되어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c) 변화되는 남성들

 

남성들 중에 서서히 서로 다른 계기로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꼴레를 지지하는 자들이 등장한다흥미로운 인물은 장사꾼이다그는 전직 유엔 파견 군인으로 바람둥이 장사꾼이다.그런데 채찍질을 하는 꼴레 남편에게 “그 여자는  부인이야!”라고 소리친다그리고 꼴레의 남편은  사건에서  충격을 받은 듯하다우유부단한 성품을 지닌 남편도 자신도 마음속에서 장사꾼의 외침을 끝없이 되뇌고 있었지만기존 질서의 ‘명령’에 따라 악행을 행하고 있던 자아가 깨어나는 순간이었다그는 자책감을 갖고 자신 집에 몰려든 여자들에게 공손하게 대한다“저 분도 많이 다쳤어."라고  여인이 말한다그리고 꼴레를 지지하고 가부장주의의 온상인 원로모임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자신의 아들에게도 떠나라고 핀잔을 주면서그리고 꼴레 딸의 약혼자의 고뇌와 결단을 통해 가부장적 질서는  이상 새로운 남자 세대에게도 소망이 없음을 선언한다.

 

     

            d) 십자가의 저항

 

꼴레가 마을 사람들과 자기 딸이 보는 앞에서 남편에게 수없이 채찍에 맞는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다입을 열어 ‘물라데’를 취소하라는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는 꼴레의 모습에 관객들은 눈물이   밖에 없다그러나 맞으면서도 당당하다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버틴다채찍질을 하는 남편의 영혼은 완전히 무너진다그의 낙담과 슬픔후회와 처절함이 얼굴에 베어난다그러나 꼴레에게는 무너질  없는 정의인애믿음승리의 형상이  몸을 통해 드러난다 순간 함께했던 여성들전통적인 가부장제도에 불편했던 남성들이 한마음이 된다꼴레 딸의 약혼자가 결혼을 반대하는 그의 부친에게 마지막에 말했던 것처럼 “이 시답지 않은 전제정은 끝났다!”고 몸으로 표현하면서.

 

 

           e) 전통과 종교그리고 안테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모스크 사원 꼭대기에 놓여 있는  달걀과 하늘 높이 보이는 텔레비전 안테나이다달걀은 세네갈 전통신앙의 신적 출생을 상징하는 것인데이슬람 사원 꼭대기에 놓이면서 다시  마호메드를 기다리는 상징이 되었다그리고 안테나는 넓은 세상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열린 문화를 상징하고 있다아프리카 전통과 기성 외래종교그리고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을 통해 ‘물라데’의 역사가 펼쳐지기를 소망하는 셈벤의 기원이 담긴 장면이다셈벤은  영화를 통해 ‘물라데’라는 생명의 전통에 기초하여 폭력의 전통을 넘어서고기존의 외래종교를 새롭게 해방종교로 변모시키고세계의 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할 있는 꿈을 펼쳐보고 있다그래서 아프리카의 세네갈이 진정한 인간해방의 땅이  있다는 확신을 드러내고 있다.

 


맺는 

 

‘물라데’는 단지 아프리카 세네갈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문제의 가부장적 질서와 이데올로기는 그야말로  세계의 역사요 현실이다물론  양상은 지역과 문화마다 다를  있다그러나  원리는 동일하게 작용한다여성 억압과 인간성 말살이 그것이다여성 할례라는 악행이 가치전도에 의하여 정결한 의식으로 변모하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고발되고 있는 작품이다.

 

셈벤은 아프리카의 여성해방운동 서양의 여성해방운동 구별시키려 했다그것은 삶의 자리의 차이에서 비롯한 문화적 가치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셈벤은 아프리카 사람과 땅의 독특성을 그대로 간직한 여성해방운동 제시하고 있다그는 자신들의 전통 안에서 ‘물라데’를 찾았다그리고  ‘물라데’의 재생과 확장을 통해 아프리카 여성해방을 꿈꾸었다그리고 이런 작업을 통해 아프리카 여성들이 자신의 역사에 대항하면서 동시에 화해할  있는 길을 제시할  있었다.

 

셈벤이 그리고 있는 꼴레라는 체제 저항의 여인은 예수의 십자가와 만난다그녀가 채찍에 맞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모두 매를 맞았다그녀의 수치와 고난은 모두의 수치와 고난이었다그러나 그녀의 버팀과 정의의 수호는 함께하는 사람들이 변화되는 강력한 능력이었다꼴레는 정죄의 심판보다는 변화의 구원 택했다억압받던 여성도불의하게 억압하던 남성도하나님의 형상가운데 각자의 개인을 존중하는 진정한 개인주의요 공동체주의를 실현하는 길로 나아갔다. 예수의 인간해방운동과 만나는 점이다.


(천진석 CWN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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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가치전도의 극치

 

역사적으로 종교는 부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포로된 자를 노예로 만들고,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억눌린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지배 이데올로기 역할을 때가 많았다. '물라데' 바로 그런 종교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종교는 여성의 성욕을 억누르고 가부장적 사회에 예속된 재산으로 붙들어두기 위해 오랫동안 시행해온 '여성할례' 비인간성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그리고 폭력적인 행위를 "정결" (purification)이라 부른다. 무엇으로부터의 "정결"이란 말인가? 태어날 때부터 여성은 "저주" 받았다. "저주" 키가 여성의 성욕이다. 성욕 때문에 남성이 유혹받고, 가정이 파괴되며, 사회가 혼란에 빠진다. 그러므로 '할례' 여성을 살리고, 남성도 살리고, 궁극적으로 사회를 살리는 거룩한 의식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는 종교의 경전에 있는 문자로부터 정당화된다. 신의 말씀이 보장하는 것으로, 신의 뜻으로 거룩한 의식이 된다.

 

이런 "정결" 의식인 여성 성기 부분 절단을 시행하지 않는 여성이나 가족은 신성모독자들이다. 그들을 "빌라코로"(Bilakoro) 부른다. 말은 경멸과 조롱, 더럽고 추한 집단을 지칭하는 차별언어이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사마리아인," "이방인"이란 말과 비슷할 것이다. 비인간적인 행위와 종교적 권위주의에 대항하여 인간 본연의 몸을 지키려는 여성에게 붙여지는 차별언어인 것이다. "정결"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절단의식이 사실은 몸을 더럽히고 죽이는 반생명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바로 알고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이 "빌라코로" 낙인찍힌다. 이런 가치전도의 가부장적 사회의 모습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

 

 

      b) 가부장적 질서를 내면화한 여성들의 비극

 

영화에서 꼴레가 선포한 ‘물라데’에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집단이 여성 사제들인 살린다나집단이다. 전통적으로 어린 소녀들의 ‘할례’를 행하는 자들이 이들이었고, 이들은 권력집단으로 남자 장로들과 함께 가부장적 사회를 지탱해가는 지배계층이다. ‘살린다나 전통과 종교의 이름으로 자신들과 동일한 여성인 꼴레를 불결한 여인으로 정죄한다. 그리고 꼴레에게 몰리는 여성들의 인심을 차단하기에 안간힘을 쓴다. 원로 여성 사제는 꼴레가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기 때문에 그녀를 파멸시키겠다고 천명한다.

 

대목은 가부장적 질서를 내면화하는 여성들의 문제를 분명하게 그려준다. 영화‘물라데’는 여성들 스스로 가부장제 질서의 피해자이면서 어떻게 공모자가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영화이다. 여성은 생존의 테크닉으로 가부장제 질서에 순응하게 되었다고 있다. 여성 스스로 가부장주의적 가체를 내면화하여 '여성 혐오 사상' 물들게 되거나 남성중심적 제도 가운데 생존 기술의 반복적 학습을 통하여 스스로를 가부장적 기준과 범주들에 맞추게 것이다. 여성 스스로 열등성을 내면화하여 가부장제적인 억압자의 표상을 스스로 속에 각인하고만 뼈저린 상황이 영화에서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남성은 가해자/여성은 피해자'라는 가부장제적 권력에 대한 흑백논리적 단순 이해를 넘어 여성들간에도 권력관계가 발생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c) 가부장적 질서에 대항하는 꼴레의 고난

 

명의 소녀들을 집에 보호해주고 ‘물라데’를 선포하여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에 맞서는 꼴레에 대한 비난 내용을 경철할 필요가 있다. 소녀들의 엄마들이 꼴레를 “선동가”로 매도한다. 부인의 아들이 꼴레를 “미친 년”이라고 욕설을 퍼붓는다.  남편은 “내 머리 꼭대기에 앉은 년”이라고 힐난한다. 마지막으로 마을 원로가 “너는 사탄!”이라고 정죄한다. 순진한 소녀들의 마음을 훔쳐 사회부적응자로 몰고 가는 여자라는 비난이다. 기존의 체제에 도전하여 자신과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는 정신 나간 여자라는 비난이다. 그리고 가부장 질서의 중심인 남편을 무시하는 교만한 여자라는 비난이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구제받을 없는 악한 영에 사로잡힌 여자라는 정죄인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 꼴레를 향한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에 순응을 거부하고 인간해방으로 나서는 여성들에게 붙여지는 주홍글씨가 무엇인지를 그려내고 있다.

 

 

         d) 끝없는 속죄양의 창출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 아이들의 주검을 놓고 마을 남자 원로들이 서로 책임 공방을 벌인다. 일차적 책임이 라디오란다.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신서양문화를 전달하는 라디오 때문에 여성들이 이상 고분고분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라디오를 압수하여 불에 태운다. 다음으로 모든 분란이 꼴레 때문이라고 절규한다. 그리고 기존 질서를 지탱하는 원로들이나 여사제들이 이상 질문할 필요 없이 이런 비난에 완전히 동의한다. 원로는 노골적으로 아이들의 자살이 자신들의 탓으로 돌아올 것이 두려워 ‘속죄양’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물론 꼴레를 지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악한 행동에 어떤 원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채찍으로 꼴레를 때리던 남편의 채찍을 빼앗은 도시에서 장사꾼을 살해함으로 자신들의 경건한 체제를 뒤흔드는 외래문화에 대한 격한 적대감을 표출한다.


(천진석 CWN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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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장자연님의 죽음과 관련된 불의한 지배구조에 대한 분노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여성의 ' 보내며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문화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주제와 관련한 아프리카 영화 한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스만 셈벤(Ousmane Sembene)물라데 Moolaadé’ (2004)

 여성해방운동을 비롯한 인간해방운동이 극복해야 하는 가장 끈질기면서도 완고한 전통이 가부장제적 질서와 이데올로기입니다. 가부장주의 세계관과 문화가 낳는 폐해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있는 지를 가장 명료하게 그려낸 영화중의 하나가 우스만 셈벤(Ousmane Sembene) 작품인물라데Moolaadé’ (2004)입니다. 영화는 아프리카의 소위 여성 할례가 가부장적인 질서 내에서 어떠한 가치전도를 가져오고 인간성을 말살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오래된 가부장주의 이념과 질서 가운데서도 질식되지 않고 살아남은 인간해방의 전통인물라데 앞세워, 아프리카인에 의한, 아프리카인을 위한 개혁을 주문합니다.


물라데 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모티브를 던져줍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꼴레(Cole)라는 인물을 통해 양보할 없는 정의의 실현이란 과제를 사랑이란 수단으로 어떻게 수행할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성의 단호함과 긍휼함을 통해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이 꼴레와 인격적으로 연대감을 갖게 되는 체험을 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가부장적 질서의 해체를 위해 예수의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신학적인 질문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물라데영화 감상을 통하여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인간 삶의 가치전도를 가져와 건강한 인격체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여성과 남성을 지배와 복종, 폭력과 순종이라는 구조 가운데 묶어버리는죽음 질서임을 다시 확인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인간해방을 위한 연대의 중요성, 정의실현을 위한 일관된 입장 표명 행동의 필요성을 기독교 신학적 입장에서 재조명해볼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천진석 총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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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관네트워크 2011 ‘신앙과 영화’ 세미나 (2) 2011년 3월 7일(월)

영화: 장미의 이름 (The Name of the Rose, 1986)

발표자: 오민석


1. 원작자/연출자

<움베르토 에코>

  1) 기호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미학자이면서 다양한 언어를 섭렵하고 있는 현시대 세계 최고의 이탈리아 지성인.

  2)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의 지식을 총 동원한 첫 장편소설.

  3) 대표작으로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그리고 여러 이론서와 수필집들이 있다.


<장 자크 아노>

  1) 뤽 베송과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2) 여러 장르를 다루었지만, 자연에 대한 환상 또는 인류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많다.

  3) 대표작으로 ‘연인,’ ‘불을 찾아서,’ ‘에너미 앳 더 게이트,’ ‘티벳에서의 7년’ 등이 있다.


2. ‘장미의 이름’을 알기 위한 배경 지식

  1) 윌리엄 수도사

책에 나오는 윌리엄 수도사는 1300년대 중세 철학자인 윌리엄 오캄(William of Ockham, 1285~1349)이라는 실존 인물에 기초하고 있다고 한다. 청년시기 프란시스코회 수도사가 되고, 옥스퍼드와 파리에서 강의했다. 논리학과 인식론에서 뛰어나며, 유명론(Nominalism)의 입장으로 중세의 사변신학 붕괴기에 근세의 경험론적 사상을 준비한 자로 평가된다.

  2) 윌리엄 오캄의 철학적 배경

    a) 오캄의 면도날 (사유의 경제원리)

‘더 적은 것을 가정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더 많은 것을 가정해서 설명한다면 헛된 일이다.’ 충분한 이유 없이 무언가를 참 이라고 믿어서는 안된다. 필연성 없이 실재를 증가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신과 관련해서는 ‘모순을 제외하고 신에게 불가능한 것이란 없다.’는 입장이다. 둥근 사각형, 결혼한 총각은 만들 수는 없지만 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을 위반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신의 입장에서는 필연적이고, 세상의 입장에서는 우연적이다. (임의성을 말하는 것은 아님)

    b) 유명론 (개별자 사이의 공통점은 오직 이름뿐, 보편자에 대한 부정)

사과와 소방차라는 개별자는 ‘빨갛다’는 보편자를 가지고 있다. 개별자의 존재는 분명하지만 시공을 초월해서 공유되는 보편자의 존재는 의심스럽다. 윌리엄은 논리학과 경험주의를 토대로 철학을 완성했지만 보편자를 거부한 이유는 보편자를 상정한 이론이 정합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지 보편자가 불완전한 개념이기 때문에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3)역사적 배경1

    a) 카노사의 굴욕

1077년 교황 그레고리 7세는 교회의 세속화를 막기 위해 황제 하인리히 4세와 성직자 임명권을 놓고 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 황제 하인리히 4세는 파문되었다.

    b) 십자군원정

1096년부터 시작된 십자군원정으로 교황권은 왕권을 크게 압도, 하지만 200년 동안 계속된 십자군원정의 결과적인 대실패로 교황권의 약화와 봉건제의 붕괴를 야기했다.

    c) 아비뇽유수

교황 보나파키우스 8세는 황제 필립 4세와의 대립에서 대패, 아비뇽으로 유수를 당했다(1309-1377).

    d) 봉건제의 붕괴로 발생된 여러 유럽학파, 아랍 문화에 대한 재인식 -> 상업, 과학, 문화적인 측면의 큰 변화. 특히 아우구스티누스 이후로 플라톤에 의해 밀려났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적들이 번역되기 시작했다, 플라톤 철학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신학의 많은 문제들을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보안(토마스아퀴나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신학을 다시 구성한 철학자)했다.

---신비주의에서 이성주의로 사상이 넘어가는 시기, 왕권과 교황권의 갈등의 시기---


  4) 역사적 배경2

    a) 1314년 바이에른의 루드비히가 프랑크푸르트의 다섯 독일 제후들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의 최고 통치자로 선출, 라인의 영주와 퀠른의 대주교가 프리드리히를 선출, 유럽의 황제가 둘이 되었다.

    b) 1316년 아비뇽에서 요한 22세가 교황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c) 1322년 루드비히가 프리드리히를 왕권에서 끌어내리자 교황 요한 22세는 루드비히를 인정하지 않고 파문하였다.

    d) 1322년 5월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미켈레가 주축이 되어 개최한 페루지아 총회에서 ‘그리스도의 청빈’이 주장되고, 1323년 11월 교황 요한 22세는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이단시 하였다.

    e) 1324년 루드비히 황제는 <작센 하우젠 선언>을 반포하며 교황 요한 22세를 이단으로 몰아 부치면서 (교황을 공격하기 위해)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5) 역사적 배경3 (서두의 시대적 배경)

    a) 1327 11월 말, 교황에 대적하기 위해 프리드리히와 다시 제휴한 황제 루드비히가 이탈리아 밀라노로 내려와 대관식을 거행하게 된 상황부터 이야기 시작한다.

    b) 페루지아 총회 이후 아비뇽으로 소환 명령을 받은 미켈레가 신변의 위험해지자,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교황 측 사절단과 황제 측 사절단이 한 곳에 모여 사전에 협상하는 자리를 만든다.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이 협상을 통해 양자의 실세를 서로 인정하고, 차후 교황 측으로 미켈레와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신변안전 보장까지 받으려는 의도였다.

    c) 이 첫 모임을 주선하기 위해 선발된 사람이 황제 루드비히의 직속 신하이고 아드소의 아버지와 친구인 윌리엄 수도사였다. 수도사 로저 베이컨으로부터 경험론 철학을 사사 받은 명석한 수도사이다.

    d) 윌리엄 수도사는 황제와 교황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베네딕트 수도회의 한 수도원을 선정하여 회합 며칠 전 문제의 수도원에 먼저 도작.


3. 장미

장미는 색에 따라 다르지만 모두 사랑에 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붉은 장미-정절, 열렬한 사랑, 흰 장미-존경, 사랑의 탄식, 노란 장미- 질투, 부정한 사랑, 분홍 장미- 사랑의 맹세, 들장미- 짝사랑)

  1)신에 대한 사랑 (어떠한 방식으로 보여지든지 신적 존재에 대한 열망은 공통분모)

    a) 윌리엄 수도사

‘선을 식별하는 지식이 인간의 의지를 결정하기에, 올바른 지식이 없이는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의 자유를 가질 수 없다.’

윌리엄은 자신이 가진 방대한 지식과 체계적인 논리와 이성으로 신앙체계와 신앙을 이루고 있는 체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발견된 모순과 불의에 맞서려 했지만, 지성이 모순을 이길 수 없는 세계에 지적 절망을 마주하게 된다.

    b) 호르헤 사서관장

웃음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책을 죽음과 맞바꾸어서라도 감추려고 한 인물, 신앙인의 탈을 쓴 악마 같은 인물, 호르헤의 행동은 아우구스티누스적 신학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자신의 명예와 가치관을 정립시켜준 베네딕트 수도원에 대한 미련과 고집뿐 아니라, 자신의 진리에 대한 또는 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c) 우베르티노 원장

사회지도자의 책임에 눈을 뜨고 수도원 외적인 행위를 하다 발각되어 졸지에 마녀사냥을 당하지만 그는 결과보다는 동기의 중요성을 설파하면서, 그 나름대로의 진리에 대한 신념과 옳은 일에 대한 정담함을 나타내었다.

    d) 아델모와 그 외 죽은 수도사들

감추어진 진리의 이면을 찾고 괴로워하고 더 알기 원하는 젊은이들. 진리는 찾는 사람이 있기에 더욱 존재가치가 드러나고, 이 들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한 발짝 더 내딛는 길이 신에 대한 확신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2) 인간에 대한 사랑

    a) 아드소

순간적인 육체적인 유혹에 수도사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할 만한 사건을 만들어냈지만 그는 사건을 통해 진정한 진리와 신앙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 스스로 반문하고 회의함이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이끄는 길잡이가 되도록 했다. 계율을 파기했지만 그 원인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순수한 사랑이었다.

    b) 윌리엄 수도사

아드소의 고백에 윌리엄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인간적 사랑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수도사로서 교육받아온 그의 이성으로는 육체적 욕망은 저주와도 같은 것이지만, 결국 사랑이 없다면 세상은 지루해질 것이라는 보편적이지만 논리적인 입장에 이르게 된다.


4. 이름

  1)인식의 과정

인간은 ‘장미’라는 이름을 통해서 장미를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그 기호 없이는 장미 그 자체를 인식 할 수 없다. 결국 이름과 인간 사이에는 거대한 기호의 다리가 존재하고 있고, 발전시켜서 영화의 핵심 기호인 장미(사랑)는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중요한 다리를 의미함을 알 수 있다.

  2)그녀의 이름

이름은 사물의 존재를 완성한다. 아드소가 평생을 잊지 못하고 감사함과 죄책감으로 살아가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인 그녀. 그러나 아드소는 정작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자라온 환경과 모습과 숨결 하나하나, 꿈 속에서까지 또렷하지만, 아드소의 기억 속 그녀의 완성은 그녀의 이름을 통해 이루어진다.


5. 결론

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지배하는 집단이 있고, 그 집단이 추구하는 (혹은 이해관계에 있는) 방향 혹은 핵심철학이 있다. 그리고 이 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인류는 항상 그 치열한 과도기의 연속 안에서 진화한다. 하지만 각기 다른 시대의 철학 속에는 기본적인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신(진리)을 사랑하여 신(진리)을 닮기 위해 신(진리)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고, 그 결론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 아직도 인류는 신(진리)을 닮아가는 과정 위에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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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및 요약: 이은선


1.
영화 소개 / 배경

 

 이 영화는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팽배해 있던 1930년대 말을 배경으로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이라는 대 비극을 오히려 코미디로 다룬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작품이다. 그가 각본, 연출, 주연까지 도맡았던 이 영화는 칸느영화제를 비롯하여 아카데미상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영화제들을 휩쓸었다. 역사상 최악의 비극중 하나인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희극적으로 묘사한다는 이유때문에 많은 비평가들의 우려를 샀지만, 영화는 고난 가운데서도 삶의 긍정적인 시각을 통해 승화된 아름다움을 성공적으로 표현하여 베니니는 많은 찬사를 받았다.

 


2. 감독의 의도

 

 이 영화에 담겨져 있는 주인공 귀도와 조슈아의 에피소드들은 상당 부분이 감독의 실제 가족사에서 빌려온 이야기라고 한다. 이런 구체적인 상황과 파시즘에 편승했던 이탈리아의 역사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베니니 감독이 쉽게 접근하기에는 유대인 학살이 너무 무거운 주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베니니는 러시아의 혁명가 트로츠키에게서 강한 정신적 모티브를 찾게 된다. 벙커에 갇혀 스탈린이 보낸 암살자들 앞에서 트로츠키는 오직 공포만이 존재하는 그 순간에도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글을 남겼다. 죽음에 직면한 상황에서 트로츠키가 보여준 너무나 특별한 인생의 우수와 비애에 관해 생각에 빠져들었던 베니니는 가장 극악한 상황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사랑과 웃음에 깃든 의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영화에 묘사된 내용들은 실제로 있었던 비극의 심각성에는 결코 미치지 못한다. 상상할 수 없는 공포는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관객들이 내 영화에서 리얼리즘을 찾도록 만들고 싶지 않았다.”

 

 베니니는 자신의 이러한 고백을 통해 영화의 의도를 표현한다. 그리고 영화에서의 처음과 마지막 대사에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카타르시스의 정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간단하지만 어려운 얘기를 하고자 한다. 동화처럼 슬프고 놀라우며 행복이 담긴 이야기이다.’

우리가 이겼어!’ (조슈아)  

 

 감독은 비록 현실은 비극적이지만 아버지의 고귀한 희생을 통해 살아남은 아들을 통해 살아있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역사의 비극을 우회적으로 꼬집으며, 그 안에 작은 사람들의 거대한 감동의 저항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귀도라는 인물을 통해 감독의 의도를 읽어나갈 수 있다. 귀도가 도라를 만나게 될 때마다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해프닝들, 그리고 안녕하세요, 공주님이라는 일관성있는 사랑의 해학과 유머러스한 모습을 통해 이야기가 끝까지 희극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   

 

3. 영화를 통해 바라보는 관점 (기독교적 세계관과 접목하여)

 

1) 역사에 관하여

  영화는 역사적인 사건에서 소재를 택하여 역사 현장에 대한 생생한 감각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은 기록성을 갖고 있기에, 역사적 자료로서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영화 감독과 역사가 모두 과거를 기록함에 있어서 자신들이 갖고있는 가치 체계를 통해 과거를 해석하는 동일한 작업에 임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와 역사는 그 목적에 있어서 서로 다른 모습을 노출한다. 영화는 상업적 기능을 지향하며, 스토리의 결론은 허구이다. 사실적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하더라도 영화의 감동은 허구의 재구성을 통해 발견된다. 그러므로 가벼운 오류에 빠질 수도 있지만 역사가 인식하지 못하는 코드를 섬세하게 짚어낼 수 있는 작업이 가능하다. 만드는 이의 창조적 의식과 관객의 창조적 받아들임이 입체적으로 어우러져 새로운 바라봄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거시적인 역사의 참담한 현실을 가족의 사랑이라는 축소적 현실을 통해 바라보게함으로써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의 미학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특히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희망을 잉태하게 되고, 그 눈물겨운 감동은 하나님 안에서의 우리를 연상케 한다.        

 

2) 행복에 관하여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하다. 브레이크 고장이라는 위험한 상황은 공주를 만나는 행복으로 이어지고, ‘공주가 결혼할 뻔한 아슬한 장면은 그들의 사랑인 조슈아의 미소로 전환된다. 그리고 극한 공포의 수용소에서는 어버지와 아들의 천진난만한 게임과 낭만적인 사랑의 그리움으로 표현된다.

 영화는 가장 낮은 현실의 상황이 오히려 희망을 이끌어내는 힘이 됨을 보여준다. ‘행복은 주어진 현실보다 극복하고자하는 의지와 사랑의 믿음에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경속의 상황들과 하나님 안에서의 중심인물들의 움직임을 떠올릴 수 있다.

 

3) 거짓에 관하여

  주인공 귀도는 거짓말쟁이다. 자신을 왕자님이라 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공주님이라 하고 아들에게는 현실을 게임이라 속이고, 영화가 흐르는 내내 거짓말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가 진짜 거짓말쟁이가 아님은 그의 환상적인 허구속에는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벌어지는 모든 상황들은 거짓이 아니지만, 아내 도라의 정략결혼에는 진실이 없고, 나치가 자행하는 만행의 명분에도 진실은 없다. 그 모습은 독일의사가 끝까지 우스꽝스럽게 수수께끼를 풀려는 모습 속에 나타난다. 결국 역사를 장식하는 이들에게는 진실이 없고 어두운 명분과 탐욕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현실적 삶의 우선순위가 되는 이데올로기가 가장 리얼한 거짓말임을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2000년 전의 예수님은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휩싸인 사람들에겐 거짓말쟁이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진정 진실이었고, 인간이 바라는 허울은 거짓임을 우리는 직면하게 된다.   

 

 우리가 역사를 만날 때 사실을 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내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역사의 ‘트라우마’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트라우마는 단지 그것을 일으킨 사건이 처참한 사실일 경우에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건이 의미의 세계에 굳건히 닻을 내리지 못할 때, 트라우마는 발생한다. 마음속에서 종결되지 못한 기억은 소멸되지 않은 채 우리의 내면 풍경을 지배한다.

 이 영화의 위대함은 역사의 불행한 기억으로 인해 또다시 이어갈 수 있는 왜곡의 삶을 건강한 시각으로 교정해 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거창한 항거의 모습과 비참한 현실이 연출되지 않았다하더라도 절망을 희망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감동에는  함박웃음을 통해 눈물의 자국을 지워가는 치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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