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확신과 이해 가운데 행동하는 꼴레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꼴레의 말뿐만 아니라 그녀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태도이다.꼴레는 늘 당당하고 거침없이 불의에 맞선다. 특히 가치전도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남성원로들과 여사제들에 대하는 의연한 태도에서 예수가 성전청소를 행하던 그 기개가 느껴진다. 그리고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 대한 한없는 용납과 보호가 잔잔히 그려진다. 여성할례는 종교적으로도, 전통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악행임을 일관되기 표현한다. 꼴레의 딸이 왜 나를 할례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녀는 당당하게 말한다.: “알라는 위대하셔! 네가 ‘빌라코로’임을 부끄럽게 느끼지 마. 알았지? 생식기 절단(genital mutilation)은 악한 짓이야. ‘빌라코로’는 좋은 부인이고 좋은 엄마란다.”
b) ‘물라데’의 연대와 해방공간
꼴레네 집의 세 명의 부인들은 서로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큰 부인을 중심으로 초지일관 꼴레를 지지한다. 그리고 여사제들이 몰려왔을 때나 꼴레가 끌려가 채찍을 맞을 때 그녀의 뒤에 버티고 서서 변함없는 지지를 표현한다. 이런 행동 때문에 원로들이나 여사제들이 꼴레를 함부로 다룰 수 없게 된다. 연대를 통하여 한 여성의 버팀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꼴레의 집은 해방공간이다. 이곳을 찾은 소녀들은 보호함을 입고, 함께한 여인들은 자유함과 편안함이 있다. 그리고 유대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함께 축제의 춤을 춘다. 꼴레 말을 듣지 않고 몰래 딸을 빼내가 할례를 받게 해 결국 죽게 한 여인의 처절한 통곡에 여인들이 함께 운다. 그리고 자기의 갓난아기를 그 어미에게 내어준다. 서로가 서로의 자녀들이요, 어머니들임을 선언하는 행동이다. 연대가 절정에 이르는 장면이다.
‘물라데’를 통하여 형성된 해방공간은 기존의 억압적 현실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탈중심화의 공간이요 대항 헤게모니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이런 공간을 통하여 서로의 의식화, 불의한 상황에 대하여 ‘아니오’ 할 수 있는 시각과 용기, 평등한 존재에 대한 확신, 구체적이며 역사적인 공간에서의 실천적 평등성에로 연결을 지향해 나갈 때, 여성해방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 공간이 바로 교회가 되어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c) 변화되는 남성들
남성들 중에 서서히 서로 다른 계기로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꼴레를 지지하는 자들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인물은 장사꾼이다. 그는 전직 유엔 파견 군인으로 바람둥이 장사꾼이다.그런데 채찍질을 하는 꼴레 남편에게 “그 여자는 네 부인이야!”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꼴레의 남편은 이 사건에서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우유부단한 성품을 지닌 남편도 자신도 마음속에서 장사꾼의 외침을 끝없이 되뇌고 있었지만, 기존 질서의 ‘명령’에 따라 악행을 행하고 있던 자아가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책감을 갖고 자신 집에 몰려든 여자들에게 공손하게 대한다. “저 분도 많이 다쳤어."라고 한 여인이 말한다. 그리고 꼴레를 지지하고 가부장주의의 온상인 원로모임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자신의 아들에게도 떠나라고 핀잔을 주면서. 그리고 꼴레 딸의 약혼자의 고뇌와 결단을 통해 가부장적 질서는 더 이상 새로운 남자 세대에게도 소망이 없음을 선언한다.
d) 십자가의 저항
꼴레가 마을 사람들과 자기 딸이 보는 앞에서 남편에게 수없이 채찍에 맞는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입을 열어 ‘물라데’를 취소하라는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는 꼴레의 모습에 관객들은 눈물이 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맞으면서도 당당하다.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버틴다. 채찍질을 하는 남편의 영혼은 완전히 무너진다. 그의 낙담과 슬픔, 후회와 처절함이 얼굴에 베어난다. 그러나 꼴레에게는 무너질 수 없는 정의, 인애, 믿음, 승리의 형상이 온 몸을 통해 드러난다. 이 순간 함께했던 여성들, 전통적인 가부장제도에 불편했던 남성들이 한마음이 된다. 꼴레 딸의 약혼자가 결혼을 반대하는 그의 부친에게 마지막에 말했던 것처럼 “이 시답지 않은 전제정은 끝났다!”고 몸으로 표현하면서.
e) 전통과 종교, 그리고 안테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모스크 사원 꼭대기에 놓여 있는 큰 달걀과 하늘 높이 보이는 텔레비전 안테나이다. 달걀은 세네갈 전통신앙의 신적 출생을 상징하는 것인데, 이슬람 사원 꼭대기에 놓이면서 다시 올 마호메드를 기다리는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안테나는 넓은 세상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열린 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아프리카 전통과 기성 외래종교, 그리고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을 통해 ‘물라데’의 역사가 펼쳐지기를 소망하는 셈벤의 기원이 담긴 장면이다. 셈벤은 이 영화를 통해 ‘물라데’라는 생명의 전통에 기초하여 폭력의 전통을 넘어서고, 기존의 외래종교를 새롭게 해방종교로 변모시키고, 세계의 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할수 있는 꿈을 펼쳐보고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세네갈이 진정한 인간해방의 땅이 될 수있다는 확신을 드러내고 있다.
맺는 말
‘물라데’는 단지 아프리카 세네갈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문제의 가부장적 질서와 이데올로기는 그야말로 전 세계의 역사요 현실이다. 물론 그 양상은 지역과 문화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원리는 동일하게 작용한다. 여성 억압과 인간성 말살이 그것이다. 여성 할례라는 악행이 가치전도에 의하여 정결한 의식으로 변모하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고발되고 있는 작품이다.
셈벤은 아프리카의 여성해방운동을 서양의 여성해방운동과 구별시키려 했다. 그것은 삶의 자리의 차이에서 비롯한 문화적 가치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셈벤은 아프리카 사람과 땅의 독특성을 그대로 간직한 여성해방운동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자신들의 전통 안에서 ‘물라데’를 찾았다. 그리고 그 ‘물라데’의 재생과 확장을 통해 아프리카 여성해방을 꿈꾸었다. 그리고 이런 작업을 통해 아프리카 여성들이 자신의 역사에 대항하면서 동시에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할 수 있었다.
셈벤이 그리고 있는 꼴레라는 체제 저항의 여인은 예수의 십자가와 만난다. 그녀가 채찍에 맞을 때 함께 했던 사람들이 모두 매를 맞았다. 그녀의 수치와 고난은 모두의 수치와 고난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버팀과 정의의 수호는 함께하는 사람들이 변화되는 강력한 능력이었다. 꼴레는 정죄의 심판보다는 변화의 구원을 택했다. 억압받던 여성도, 불의하게 억압하던 남성도, 하나님의 형상가운데 각자의 개인을 존중하는 진정한 개인주의요 공동체주의를 실현하는 길로 나아갔다. 예수의 인간해방운동과 만나는 점이다.
(천진석 CWN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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